2003/07/04 【다섯째날】


졸립다.

아~... 6시 50분...








우아아아악!!







집합 시간은 7시 10분전. 바로 지금.
집합 장소는 여행사 앞. 걸어서 3분 거리.
엄마야!
2초만에 기상,
5분간 샤워,
2분 동안 마야마군이 깨지않게 조용히 옷 갈아입고 렌즈 끼고,
3분간 짐싸고 방을 나선다.

집합 장소까지 슈퍼 하이 울트라 스피드로 달리기. 연기났을지도.

도착!

7시5분,




아앗!


...앗...아무도 없다.
차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했는데, 아무것도 없다.
벌써 가버린 거?

진짜?

내 코끼리는?

오 마이 엘레펀트!

우연히, 여행사 문이 조금 열려있는 것을 발견.
안쪽에 아줌마가 돌부처처럼 앉아있다.

「안녕, 아줌마! 칸차나부리에서 코끼리 타기 투어!」

「...응? 어, 그거. 거기 앉아서 기다려봐. 아직 아무도 안온 거 같다」


( ゜_ゝ゜)…털썩

...그렇다. 여기는 외국이였다...
땀 범범에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다. 앉는 것도 귀찮다.
밖으로 나가 기다린다. 정말 아무도 없다.
이 이른 시간에 사람이 있을 만한 동네가 아니긴 하지만.
도로를 살펴본다, 5cm이상은 됨직한 연갈색의 바퀴벌레가 이동중. 괜시리 더 열받는다.


야! 부스럭 거리지 좀 마!!

7:15 구미계의 대학생 같아보이는 참가자 등장.
「하이, 모닝」

모닝 같은 소리 하네.

잠도 얼마 못잤는데... 울화통이 치민다.

지각 속출, 하긴 운전수도 지각하는 마당에, 뭐. 출발은 7시 45분.

하아~. 하아~.( ´_ゝ`)

어쨌든 차안에서 1시간 가량 정신없이 자고난 후, 묘지 견학.
가이드가, 철도를 만든 연합군 포로의 공동묘지라고 설명해줬다.
기본적으로, 문화, 예술과는 좀 거리가 먼 타입이여서, 봐도 별로 흥미로워 보이지 않았다.
그치만, 잔디가 깔끔하게 깎여져 있고, 제대로 관리하고 있는 점만은 굿.

그 다음, 영화「콰이강의 다리」의 무대가 된, 그 다리를 보러가는 것 같다.
그 다리는, 일본군의 유송망 단절을 노린 연합군에 의해 폭파의 표적이 되고..
그 결과, 많은 희생자를 낸 것이라고 유일한 일본인 참가자인, 나를 보며 설명해주는 가이드 아저씨.
으~응. 으~응. 으~응..

그 다리 밑을 흐르는 강을, 뗏목으로 건넌다.


타이에 와, 처음으로 관광지의 사진을 찍은 것 같다.

덥다. 지금 팔 쪽이 타고 있는 게 느껴질 만큼 덥다.
햇빛도 장난이 아니다.
근데,다. 뉴질랜드에서 급류타기를 했을 때도, 카누를 탔을 때도 그랬지만...
곰팡이 투성이의 구명조끼를 입히는 것은 세계공통인걸까?

이 곰팡이 냄새와 더위 탓에, 탄지 5분만에 어지러워졌다. 으웩.

탔던 사람들 대부분을, 상당한 체력 소모로 이끈 뗏목이였다.

자, 드디어 다음은 기차를 타고, 코끼리가 있는 목장(?)까지 이동이다.

우우, 마침내
메인 이벤트가!

여기서 두 그룹으로 나뉘였다.
서양인들은 모두 2박3일의 투어로, 코끼리를 타고 트레킹을 할 예정이란다.
그에 반해, 한국인 4명과 나는 당일 투어였기 때문에, 일단 기념으로 코끼리를 타본 뒤, 방콕으로 돌아간다.

우선은 역에서 기다린다. 사람들이 철망을 수작업으로 잇고 있다. 콘크리트 벽이라도 만드는 걸까?



10분 뒤라고 했지만, 기차는 20분 후 도착. 꽤 멋지다. 낡은 느낌이, 고풍스럽게 느껴진다.

승차.


출발해 바로, 좀 전의 다리를 건넜다.


배도 고팠고, 덥고, 목 말라서 물 샀더니 방콕의 두 배나 하고, 잠도 못잤고, 뗏목은 힘들었고...
누구와도 말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여서 창가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바깥 풍경을 내다보기로 했다.
하늘이 파랗고, 구름이 희다. 지구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기차는 기적 소리를 울리며 달린다. 지금은 듣기 힘들어진, 이 소음이 기분좋게 느껴진다.
종점에서 내리라는 말만 들은 채, 어느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언제 쯤 도착하는지도 모른다.
응.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밖을 내다보는 것 뿐.

비슷한 풍경들이 계속되고 있지만, 왠지 질리지 않는다.

풀 모양이 미묘하게 다른 것, 땅 색깔이 빨갛다는 게 신선하게 보인다.

앞에 앉아있는 노인은 조금의 미동도 없이 창 밖을 응시하고 있다.
그는 이 근처에 사는 사람일까? 뭐하는 사람일까? 그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지금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실례라고는 생각했지만, 사진을 찍어보았다. 눈빛이 멋지다.

높은 하늘과 흰 구름에 감화된 것은 아니겠지만, 왜인지 내 마음도 정화되어 있었다.
그리고 촛점없는 눈은 어디를 보고 있었던 건지, 지금은 더더욱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지만 잠시, 여러가지 생각에 잠겨있었던 것 같다.
특별히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기 보다는, 눈을 뜬 채로 꿈을 꾸고 있었던 느낌이랄까?

학창 시절의 추억이 생각나, 갑자기 웃음이 나거나, 아직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픈 기억을 떠올리거나.
꿈이라는 무대에서는, 실생활에선 그다지 상관없는 사람이 주인공이 되어 나타나는 일이 자주 있다.
평소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거의 생각하는 일이 없을 정도로 멀어져버린 그리운 친구.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이 차례로 나타나서는, 그것과 함께 그 사람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영상으로 끝도 없이 펼쳐진다.
갑자기, 모두에게 그림 엽서라도 써볼까?하는, 보통 때 같으면 생각할 수 조차 없는 그런 맘까지 든다.

이 3일간 방콕에서 겪었던 일도 되살아난다.
버스 탈 때 맡은 배기 가스 냄새. 게스트 하우스의 눅눅한 냄새.
거리 전체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불협화음들.
바나나 날리기 아줌마. 그걸 보고 크게 웃어버린 내 자신.
가슴을 다 드러낸 젊은 여성들. 그리고 그녀들 앞에서, 진지하게 일본어 수업을 했던 내 자신.

마치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이, 딴 사람의 일이라고 생각될 만큼, 주관이 느껴지지 않는 영상.
왜 그렇게 느꼈는 지는 모르겠다.

눈 앞의 풍경은 기차의 속도에 밀려나,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인다.

파랑, 하양, 초록, 빨강.

인공적인 걸 좋아하고, 자연이 아릅답다는 둥 거의 느끼지 않는 타입이지만, 이 때만큼은 묘하게도 자연에 이끌려 버렸다.

세상에는, 색을 표현하는 단어가「흑과 백」두개밖에 없는 언어도 있다.
물론 그들이 흑백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언어와 인식력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런 언어를 가진 나라의 사람이, 이 풍경을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어떻게 느낄까?
어쩌면, 이럴 때 새로운 단어가 생겨날지도 모른다. 생겨났다고 한다면 아름답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방콕의 소음에도 타이다움이 있지만, 이런 순간 또한 색다른 타이를 느끼게 해준다.
아무튼, 이렇게 멋진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준 기차에 감사의 맘을 표하지 않으면.. 콥쿤캅.

아직도, 그 풍경들이 눈에 선하다.
한동안 카메라의 존재 조차 잊고 있었고, 사진에 담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딱 한 번 하늘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핀트도 안맞고, 전선까지 나와버린 형편없는 사진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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