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내 연애에 관한 이야기다.


2003/07/02 【셋째날】

오전 11시. 카오산 거리.

오늘도 싼 브랜치를 먹기 위해 어슬렁 어슬렁 걷고 있는 찰나,



강렬한 시선.


잠깐, 시선에 관한 얘기는 제쳐두고, 지금 깨달은 게 하나 있다.
밤의 여인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아무리 더워도 기본적으로 여성들은 노출이 심한 옷은 거의 입지 않는다.
예를들면 가슴이 푹 파인, 그런 옷.
티셔츠 차림이나 얇은 블라우스, 그런 심플한 옷이 많은 것 같다.
그리고 짙은 화장도 잘 안한다. 아예 노메이크인 사람도 많고.


그럼, 다시 시선 얘기.
그 시선의 주인은... 상당히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있다.
키도 크고, 화려한 색조 화장.


왔는가...

역시다. 네. 그렇습니다요. 3일 연속인가...

그녀, 아니 그는 내 뒤를 쫓아온다. 게다가, 따라오고 있는것도 너무 티난다.

앞에서 소개했던 귀여운 아줌마네 쥬스 가게.
나는 언제나처럼 요구르트 쥬스를 주문했다. 결국 멈춰섰다는 얘기다.
누가 팔을 건드린다.
돌아봤더니 윙크.


사람이란, 익숙해진다는 것은 멋진 일이라고 몇 번이나 말해왔지만, 익숙해진다는 건 무서운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내 감정을 객관적으로 분석한다면, 상당히 반기고 있는 쪽이였다.
그리고 어제의 반성도 있고. 이 만남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어쨌든 우리는 같은 자리에서 쥬스를 마시게 됐다.
다만, 전에 만난 두 명의 누나들 보다, 비쥬얼적인 면이 조금 뒤쳐진다는 배부른 고민.
어제, 그제 만난 두 사람의 사진을 다시 한 번.


그리고, 지금의 그녀. 좀 무섭다.


외모로 판단해선 안되는 건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은 동물의 숙명. 기왕이면 이쁜 게 좋지.
이랄까, 다리털이 삐죽삐죽 다시 나고 있는데다가, 콧털까지 보이는 게... 거기에, 수염도 드문드문.
여성들의 체모에 익숙치 못한 나로서는, 견디기 힘든 상황.
원래 털이 진한 것까지는 괜찮지만,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 그 무신경함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뭐, 개인적인 취향은 이 정도로 해두고... 대화가 시작된다.

남자가 몸도 마음도 여자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한정된 직업을 갖을 수 밖에 없다는 건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역시 밤의 서비스업이 많을 것이다.
그녀는 가라오케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자세한 건 모르지만, 아무래도 단란주점 같은 가게인 것 같다.
일본인도 많이 온다고 한다. 일본어를 조금 할 줄 아는 그녀가 자신있는 노래는 우타다 히카루의 first love.

「아-, 나, 이름은 아이입니다」

「아-, 나, 아버지, 어머니, 치바에 있습니다」

「아-, 나, 치바, 한 번, 갔었습니다」


「아버지 직업은?」

「아-, 타이 요리」

「어머니는?」

「아-, 타이 요리」

「당신은 일본에 있었을 때,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아-, 타이 요리」

전부 타이 요리인가.

「요리 잘해? 」


「아-, 네. 조금만」


「어떤 요리가 자신있는데? 」


「아-, 타이 요리」


그렇구나... 전부 타이 요리였구나...
대화는 시큰둥하지만, 생긋생긋 수줍어하며 얘기하는 표정이 귀엽다.
잠깐. 그렇다고 해서 결코 그 쪽 세계로 빠져든 것은 아니다.


「아-, 지금, 어디, 가는, 중입니까?」

「SIAM」

실은 전날 타이의 전통 의상을 입고 그럴싸한 사진을 찍고 있던 나.
하루 뒤에나 찾을 수 있다고 해서, SIAM에 가야만 했던 것이다.
뭐, 어차피 볼 일이 없어도, SIAM밖에 갈 데도 없지만.


「아-, SIAM, 이세탄 백화점, 있습니다」

「그래요?」

「아-, 우리 집, 이세탄, 가깝습니다」

「음, 그래?」

「네, 아-, 걷습니다. 5분정도입니다」

「어-, 걸어서 5분? 가깝구나」

「아-, 이세탄, 키노쿠나야 서점, 있습니다」

「백화점 안에 서점이 있는거야?」

「우리 집, 가깝습니다」

「으응, 그렇구나」

「몇 살이세요?」

「아, 나? 25세」

「뻥이지?」

갑자기 왠 반말? 좀 웃겼지만.

「아니-, 진짜. 아이양은?」

「아-, 나는-, 이십 삼 살입니다」

「뻥이지?」

일단-은 나도 한방 먹여 봤다.


「아-, 정말입니다. ID 보입니다」


생긋거리며 카드를 꺼냈다. 뭔지 모르겠지만, 한국의 주민등록증 같은 걸까?
어쨌든, 타이에도 항상 휴대하는 ID 카드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얼굴 사진. 어떻게 봐도 여자다. 여장하고 찍은 사진을 등록한걸까?
그치만, 그는 누가 봐도 남자. 목소리를 들어봐도 남자. 떡 벌어진 어깨에...
혹시 진짜 여자? 남자같은 여자? 나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여도 상관없고.


「아-, SIAM에 갑니까?」

「응. 간다. 갑니다. 버스로 갑니다」


「아-, 나, 택시」


「그래?」


「아-, 택시로 같이 갑니까?」


「어, 아, 그렇구나. 그래, 그러자」


여기는, 못이기는 척.


「네!」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위험하다. 너무 귀엽다.

「아-, 이세탄에 갑니까」

「그렇구나... 키노쿠니야 서점이라도 갈까?」


며칠뒤에, 바닷가에 갈 예정이다. 날씨만 좋다면, 하루종일 해변에 누워 책을 읽는 것도 멋지겠지.
물론, 과일 쥬스도 필수. 그래야 좀 더 리조트다운 맛이 나지.

「아-, 키노쿠니야, 책을 삽니다. 아-, 그리고 내 방에 옵니까?」

「응? 뭐라구?」


「아-, 아-, 내 방...」

약간 우물쭈물하고 있다.


「응... 근데...가서, 뭐해?」



「아-...」







「아-...」







「아-...」








「아-...」
































「타이 요리」






우-. 좀 재밌다. 그런가... 전부 타이 요리였구나...
뭐, 가서는 내가 톰양쿵이 될 기세이기는 하지만.
위험 신호다. 잡아 먹힌다. 그러나, 그것 또한 재밌을지도. 아니, 미묘. 잠깐, 잠깐만...
이 이상, 그 쪽 세계로 빠져들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게 된다.

여기서 잠시, 화제를 바꾸면서, 머릿속에서는 가야할지, 가지 말아야할지, 작은 천사와 악마가 싸우기 시작.
결론은 간단하다.
우선은 SIAM에 가야하니까. 그녀의 집에 갈지 안갈지는 나중에 결정하기로 하고.
현지 사람을 접해볼 수 있다는 건 멋지다. 뭔가 새로운 발견이 있을지도 모른다.
서점에도 가고 싶고.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그럼, 짐 놔두고 옷도 갈아입고 올테니까, 10분만 기다리고 있어」

지저분한 티셔츠에 무릎까지 오는 반바지. 그리고 샌달. 완전 카오산 스타일.
이런 패션으로 멋지고 수준있는 SIAM에 간다는 것도 좀..

「아-, 네」

미소로 대답.

일단은 기념 사진 한 장.
약간은 그를 피하는 듯, 옆으로 치우친 포즈. 아직 마음 한구석에선... 역시...


숙소로 돌아갔다. 우선은 샤워.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마시길. 그녀의 집에 가기 때문이 아니다.
어제부터 하고 싶었다. 정말, 진짜루!!

그리고, 샤워를 하면 마음을 정리해본다.



어쩌면, 굉장한 일이 될 지도 모른다.



게이의 집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무지 궁금하다.
평범한 타이인의 집도 궁금하고.

젓가락처럼 가는, 뼈만 앙상한 팔이지만, 가냘픈 그보다는 쎌 것 같다.
최악의 경우... 강간이라든지... 내 몸 하나는 지킬 수 있겠지.
그치만, 만약 무에타이 선수이기라도 하는 날엔... 끔찍하다...


잠깐!

그녀는 몸도 마음도 엄연한 여자가 아닌가.
직접적인 표현이 좀 그렇긴 하지만, 강제로 당하거나 할 일은 없을 거다.
가슴도 나와있으니까, 밑은... 없겠지. 만약 있다고 해도, 그것을 쓰고 싶어하지는 않을 거야.
뭐야. 쓸데없는 걱정이였군.
다음 날, 아파서 걸을 수 없다든지, 그런 일도 아닌데.
좋아. 왠지 마음이 가벼워져 온다.

다음으로 걱정되는 게,
수면제→귀중품 도난, 이 패턴.
좀 수상수러운 점은 있다.
SIAM에 살면서, 카오산 같은 시골에는 뭣하러 왔을까?
교통도 불편하고, 가깝지도 않다. 외국인이 이용하는 게스트 하우스와 선물가게가 있을 뿐이다.
밤이라면 모를까, 이런 대낮에 현지 사람이 올 만한 장소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거기다, 그녀는 그냥 길가에 서 있었다. 사냥꾼의 눈을 하고.
카오산 하면 외국인... 으음... 외국인이 목적인걸까...
어쨌든, 주의할 필요가 있다.

숙소의 귀중품 보관함에
여권과,일본돈,항공권등을 보관.
그리고 내일 차오프라야 강에 변사체로 떠올랐을 때를 위해서, 마야마君에게 쪽지도 남겨놓는다.
「뼈는 화장해서, 하늘에서 뿌려 주세요」라고.
그럴거면 가지말지,하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모험을 좋아하는 성격.
약간의 위험 부담을 안더라도 얘기 소재가 필요한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한 페이지를 차지한 큰 이벤트로. 떡하니 자리잡고 있고.

자-, 가는거야!

몇 번씩이나 지겹지만 한 번 더. 그의 집에 간다고 해도, 그럴 생각은 없다.



옷도 갈아입고, 준비 완료, 그에게로 달려갔지...



만,










































없다. T^T







주위를 둘러본다.

역시 없다.

열심히 찾기 시작하는 나.

카오산 거리에서, 두리번 두리번 찾아 돌아다니는 나.

사랑에 눈 뜬 중학생과 같은 폭주 열차, 아니, 시베리아 초특급이 되어있는 나.

땀이 비오듯 흘러내린다.

필사적이다. 목숨 걸었다.

게이를 상대로, 무얼 그렇게...라고 우스워?

응?

웃고 싶으면 웃으세요.

나는, 그 순간만은 청춘 드라마의 주인공 보다 더 불타오르고 있었다.

콧털, 겨드랑이 털, 수염의 쓰리 털 시리즈?

그게 어때서.

수면제? 강도?

그건 뭔데?

그럴 리가 없다.

분명 순수한 맘으로 초대한거야.

나는 왜 그녀를 의심했을까?

인간 실격이다.

미안.

미안해.







하고, 포기하려 했을 때...



































발겨어언!!!





















근데,











백인 아저씨와 팔짱까지 끼고 뭔가 즐거운 듯 얘기하고 있다...



눈이 마주쳤다.



외면당했다.








실연.


사요나라... 나의 여름 날이여.

뭔가, 이 엄청난 쇼크는.

뭔가, 이 패배감은.

뭔가, 무엇인가...




우워워워워워어어어어어!




바-보, 바-보, 빠-가, 바-가, 맥도날드!












흑(;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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